아이와
아이가 시계를 못 읽을 때, 순서대로 알려주는 법
아날로그 시계는 어른에게 너무 익숙해서, 아이가 왜 어려워하는지 잘 안 보인다. 그런데 뜯어보면 시계 하나에 서로 다른 규칙이 세 개나 겹쳐 있다.
- 같은 숫자 12개를 두 바늘이 다른 의미로 읽는다.
- 짧은바늘은 숫자를 그대로 읽지만, 긴바늘은 숫자에 5를 곱해서 읽는다.
- 짧은바늘은 숫자 사이 어딘가를 가리키는 게 정상인데, 그때 앞의 숫자를 읽어야 한다.
세 번째가 특히 어렵다. 3과 4 사이에 있는데 "3시"라고 읽는 걸 납득시키는 게 쉽지 않다.
다섯 단계로 나눠서
1단계 — 정각만
긴바늘이 12에 있을 때만 다룬다. 이때는 짧은바늘 숫자를 그대로 읽으면 된다. 여기서 아이가 얻는 건 "짧은바늘이 시를 말한다"는 사실 하나다.
이 단계에서 긴바늘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게 중요하다. 한꺼번에 알려주면 둘 다 안 남는다.
2단계 — 30분
긴바늘이 6에 있는 상태를 "반"으로 익힌다. 시계를 반으로 나눈 그림을 그려 보이면 이해가 빠르다. 여기서 짧은바늘이 숫자 사이에 있다는 걸 처음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다.
"짧은바늘이 3하고 4 사이에 있지? 아직 4시가 안 됐으니까 3시야." 이 설명을 여기서 한 번 해두면 나중이 편하다.
3단계 — 5분 단위
긴바늘이 1을 가리키면 5분, 2를 가리키면 10분. 이 곱하기가 이 단계의 전부다.
구구단 5단을 아는 아이라면 금방 붙는다. 아직 모른다면 시계 숫자 옆에 5, 10, 15…를 작게 적어둔 그림을 몇 주 두고 쓰는 게 낫다. 외우게 하는 것보다 보고 읽게 하는 게 먼저다.
4단계 — 1분 단위
숫자와 숫자 사이의 작은 눈금을 센다. 이 단계쯤 오면 아이가 시계를 하나의 자로 보기 시작한다.
5단계 — "몇 분 전"
"3시 55분"을 "4시 5분 전"이라고도 한다는 걸 알려준다. 이건 읽기가 아니라 말하기 습관에 가까워서 마지막에 붙이는 게 좋다.
어른은 읽는 게 아니라 알아본다
아이에게 시계를 알려주다 답답해지는 이유가 있다. 어른은 시계를 읽지 않는다. 바늘의 모양을 통째로 알아본다. 3시 15분을 볼 때 5×3을 계산하지 않고, 그 각도를 이미 아는 그림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이게 왜 어렵지?"라는 반응이 나오고, 설명은 자꾸 결론부터 시작된다. 아이는 아직 그 그림을 갖고 있지 않아서 매번 계산해야 한다.
가르칠 때는 이걸 먼저 인정하고 시작하는 게 낫다. 아이가 느린 게 아니라, 어른이 이미 건너뛴 단계가 있는 것이다.
시계는 원래 어려운 물건이다
가르치다 답답해질 때 떠올리면 도움이 되는 사실이 있다. 아날로그 시계는 아이가 그때까지 배운 어떤 규칙과도 다르게 생겼다.
숫자를 배울 때 1 다음은 2였다. 그런데 시계에서는 1과 2 사이에 눈금이 네 개나 더 있고, 그 눈금들은 1도 2도 아니다. 게다가 같은 자리를 짧은바늘은 "1시"로, 긴바늘은 "5분"으로 읽는다. 하나의 기호가 두 가지 뜻을 가지는 걸 처음 만나는 자리다.
여기에 원형이라는 조건이 붙는다. 12 다음이 다시 1이 되는데, 아이가 그때까지 다룬 수는 직선으로만 늘어나 있었다.
즉 시계 읽기는 여러 개념이 한꺼번에 겹친 과제다. 아이가 헤매는 게 이상한 게 아니라 당연하다. 이걸 알고 있으면 한 번에 다 알려주려는 마음이 줄어든다.
자주 막히는 지점
짧은바늘을 반올림해서 읽는다. 3시 50분을 4시라고 읽는 경우다. 짧은바늘이 4에 거의 닿아 있으니 자연스러운 착각이다. "지나온 숫자를 읽는다"는 규칙을 반복해서 확인해 주는 수밖에 없다.
긴바늘과 짧은바늘을 헷갈린다. 특히 두 바늘 길이가 비슷한 시계에서 잘 생긴다. 길이 차이가 뚜렷한 시계로 연습하는 게 낫다.
숫자를 그대로 읽는다. 긴바늘이 3에 있는데 "3분"이라고 읽는다. 3단계를 서둘러 넘어갔다는 신호다.
디지털 시계와 같이 쓴다
요즘 아이가 보는 시계는 대부분 디지털이다. 그래서 "3:45"는 읽는데 바늘 시계는 못 읽는 상태가 흔하다. 이걸 약점으로 보지 말고 다리로 쓰는 게 낫다.
같은 시각을 두 시계에 나란히 놓고 보여주면 연결이 빨리 붙는다.
- 디지털에서 앞 숫자가 짧은바늘, 뒤 숫자가 긴바늘이라는 걸 짚어준다
- "45분일 때 긴바늘은 어디 있지?"처럼 한쪽에서 다른 쪽을 물어본다
- 종이 시계를 하나 만들어 두고, 디지털 시각을 보고 바늘을 돌려보게 한다
종이 접시에 숫자를 적고 할핀으로 바늘 두 개를 꽂으면 교구가 된다. 긴바늘과 짧은바늘의 길이 차이를 뚜렷하게 만드는 게 요령이다.
나이별로 기대치를 낮춘다
발달 속도는 아이마다 다르지만 대략 이런 순서로 온다.
- 5~6세 — 정각과 30분. 숫자를 읽을 수 있으면 시작할 수 있다
- 7세 전후 — 5분 단위. 5단 곱셈과 함께 붙는다
- 8세 전후 — 1분 단위, "몇 분 전" 표현
이 순서에서 앞 단계가 안 됐는데 뒤 단계를 시키면 반드시 막힌다. 아이가 못 하는 게 아니라 순서를 건너뛴 것이다.
또 하나, 시계를 읽는 것과 시간을 가늠하는 건 다른 능력이다. "3시 20분"을 읽을 수 있어도 "20분이 얼마나 긴지"는 따로 익혀야 한다. 이건 설명으로 안 되고 겪어야 붙는다.
시간을 몸으로 느끼게 하기
읽기 연습만큼 중요한 부분이다.
- 타이머 대신 시계를 보며 "긴바늘이 3까지 가면 끝"이라고 정한다
- 라면 끓이기, 양치질처럼 짧은 시간을 시계로 재본다
- 외출 준비를 하며 "지금 몇 시, 나가야 할 시각 몇 시, 그럼 몇 분 남았지?"를 물어본다
마지막이 특히 좋다. 뺄셈과 시간 감각이 한 번에 붙고, 시계를 봐야 할 진짜 이유가 생긴다.
생활에 붙이면 빨리 는다
연습 문제만 푸는 것보다, 하루 중 시계를 볼 이유를 만들어 주는 게 훨씬 빠르다.
- "긴바늘이 6에 가면 나갈 거야"
- "이 만화 끝나면 몇 시야?"
- 요리할 때 타이머 대신 시계를 보게 하기
시간을 읽는 능력은 결국 시간을 가늠하는 감각과 함께 붙는다. "10분이 이만큼이구나"를 몸으로 아는 게 숫자를 읽는 것만큼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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