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
끝말잇기에서 지지 않는 법 — 한방 단어와 두음법칙
끝말잇기는 규칙이 한 줄인데도 하다 보면 매번 같은 자리에서 막힌다. 그 자리에는 이유가 있다.
규칙은 한 줄인데 변수는 많다
"앞 단어의 끝 글자로 시작하는 단어를 댄다." 이게 전부인데, 실제로 하다 보면 정해야 할 게 계속 나온다. 두 글자만 되는지, 고유명사는 되는지, 사전에 없는 말은 어떻게 하는지, 같은 단어를 다시 써도 되는지.
미리 정해두지 않으면 막힌 사람이 그때그때 새 규칙을 제안하게 되고, 그 순간 놀이가 아니라 협상이 된다. 시작 전에 두세 가지만 합의해 두면 끝까지 깔끔하다.
왜 특정 글자에서 막히나
한국어 단어의 첫 글자로 쓰이는 소리에는 편중이 있다. 어떤 글자는 그 소리로 시작하는 단어가 수백 개인데, 어떤 글자는 손에 꼽는다.
특히 이런 글자들이 어렵다.
- 늪, 릎, 슭, 톱니처럼 받침이 특이한 글자 — 그 글자로 시작하는 단어 자체가 거의 없다
- 긔, 릇, 윽 같은 조합 — 사실상 시작 단어가 없다
- ㄹ로 시작하는 글자 — 뒤에서 따로 다룬다
이런 글자로 끝나는 단어를 던지면 상대가 답을 못 찾는다. 이걸 흔히 한방 단어라고 부른다.
한방 단어는 사실 규칙의 빈틈이다
한방 단어를 몇 개 외워 가면 이기기는 쉽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게임이 두세 수 만에 끝난다. 서로 아는 단어를 겨루는 놀이가 아니라, 외워온 목록을 꺼내는 놀이가 된다.
그래서 여럿이 오래 할 거라면 시작 전에 정해두는 게 좋다.
- 한방 단어를 쓸 수 있는지
- 한 판에 한 번만 허용할지
- 아예 금지할지
금지하는 쪽이 대체로 더 재미있다. 막히는 순간이 늦게 오고, 아는 단어를 많이 꺼내게 된다.
두음법칙을 허용하느냐
이게 판의 성격을 가장 크게 바꾸는 규칙이다.
한국어에는 ㄹ이나 ㄴ으로 시작하는 한자어의 첫소리가 바뀌는 규칙이 있다. 예를 들어 '락원'이 아니라 '낙원', '녀자'가 아니라 '여자'로 쓴다. 그래서 ㄹ로 시작하는 단어가 매우 적다.
'실력'처럼 ㄹ로 끝나는 단어는 흔한데, ㄹ로 시작하는 단어는 라디오·레몬 같은 외래어를 빼면 얼마 없다. 두음법칙을 인정하지 않으면 ㄹ 받침 단어가 전부 한방 단어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대부분의 판에서는 두음법칙을 허용한다. '실력'으로 끝나면 '역사'로 이어도 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ㄹ이 막다른 길이 아니라 갈림길이 된다.
사전에 없는 말은 어떻게 하나
가장 자주 붙는 다툼이다. 방언, 줄임말, 신조어, 상표 이름이 나왔을 때 인정할지 말지.
기준을 하나 정해두면 간단해진다. 국어사전에 실린 말만 인정하기로 하고, 애매하면 그 자리에서 찾아본다. 요즘은 검색이 몇 초면 되니 예전만큼 번거롭지 않다.
다만 아이와 할 때는 이 기준을 느슨하게 두는 게 낫다. 아이가 아는 말을 꺼냈는데 "그건 사전에 없어"로 막히면 금방 흥미를 잃는다.
실전에서 쓸 만한 것들
1. 흔한 글자로 넘기지 않는다. '가', '사', '기' 같은 글자로 넘기면 상대가 편하다. 조금이라도 드문 글자로 끝나는 단어를 고르는 습관을 들이면 유리하다.
2. 두 글자 단어를 아껴둔다. 긴 단어는 끝 글자를 고를 여지가 없지만, 두 글자 단어는 후보가 많아 원하는 글자로 넘기기 쉽다.
3. 같은 글자로 계속 돌린다. 상대가 특정 글자를 어려워한다는 게 보이면 그 글자로 다시 돌아오게 만드는 경로를 만든다.
4. 이미 나온 단어를 적어둔다. 같은 단어를 두 번 쓰는 건 대개 금지인데, 길어지면 뭐가 나왔는지 헷갈린다. 적어두면 그 자체가 유리하게 작용한다.
규칙 변형 몇 가지
같은 놀이인데 규칙 하나만 바꿔도 성격이 완전히 달라진다.
앞말잇기. 반대로 앞 글자를 잇는다. '사과'가 나오면 '~사'로 끝나는 단어를 댄다. 훨씬 어렵고, 익숙한 경로가 통하지 않아 새로운 단어가 나온다.
세 글자 이상만. 두 글자 단어를 막으면 조절이 어려워진다. 아는 단어가 많은 쪽이 확실히 유리해진다.
주제 한정. 음식, 나라, 동물처럼 범위를 정한다. 어휘량 차이가 줄어들어 어른과 아이가 붙어도 비슷해진다.
설명 붙이기. 단어를 대면서 뜻을 한 줄 말해야 한다. 아는 척으로 넘어가는 걸 막고, 아이와 할 때 학습 효과가 붙는다.
시간 제한. 5초 안에 못 대면 진다. 어휘보다 순발력 싸움이 되어 실력 차이가 줄어든다.
어휘를 늘리는 방법으로 쓰기
이기려고만 하면 아는 단어만 돌려 쓰게 된다. 반대로 쓰면 꽤 좋은 연습이 된다.
- 막힌 글자를 적어둔다. 판이 끝난 뒤 그 글자로 시작하는 단어를 찾아본다. 다음에 같은 글자가 나오면 그게 무기가 된다.
- 한 번 쓴 단어는 다시 안 쓴다. 판을 이어가려면 새 단어를 꺼낼 수밖에 없다.
- 진 판을 복기한다. 사실 댈 수 있는 단어가 있었는데 못 떠올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컴퓨터와 할 때
사람과 할 때와 다른 점이 있다. 컴퓨터는 사전에 있는 단어를 다 알고 있어서, 정직하게 붙으면 이기기 어렵다. 대신 이런 점이 좋다.
- 틀린 단어를 바로 알려준다
- 몰랐던 단어를 계속 보여준다
- 상대가 지루해할까 봐 눈치 볼 일이 없다
그래서 컴퓨터와 할 때는 이기는 걸 목표로 두지 않는 편이 낫다. 몇 번을 이어갔는지를 기록으로 삼고, 지난번보다 길게 가는 걸 목표로 하면 훨씬 오래 재미있다.
아이와 할 때는 규칙을 바꾼다
아이와 하면 어휘 차이가 커서 금방 승부가 난다. 이럴 때 쓰는 변형이 있다.
- 끝 두 글자 중 아무거나로 시작하기 — 선택지가 넓어진다
- 주제 정하기 — 음식, 동물처럼 범위를 좁히면 어른도 쉽지 않다
- 모르면 한 번 물어보기 — 힌트 한 번을 규칙에 넣는다
이기는 것보다 단어를 많이 꺼내는 게 목적이라면, 규칙을 느슨하게 하는 쪽이 훨씬 오래 간다.
끝말잇기 하기컴퓨터와 번갈아 단어 이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