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
사다리·원판·제비뽑기, 뭐가 제일 공평할까
점심 메뉴를 정하거나 당번을 뽑을 때 쓰는 방법은 대개 셋 중 하나다. 사다리타기, 원판 돌리기, 제비뽑기. 다들 무작위라고 생각하지만 각각 성질이 다르다.
공평함에는 두 가지가 있다
방법을 따지기 전에 구분해 둘 게 있다.
- 확률이 같은가 — 모두가 뽑힐 가능성이 동일한가
- 모두가 같다고 믿는가 — 과정을 다 함께 보고 납득했는가
앞의 것이 없으면 방법이 잘못된 것이고, 뒤의 것이 없으면 방법이 옳아도 다툼이 난다. 실제로 문제가 되는 쪽은 대개 뒤다.
그래서 좋은 뽑기 방법은 확률이 균등한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과정이 눈에 보여야 한다. 아래 세 가지를 이 기준으로 같이 본다.
제비뽑기 — 가장 단순하고 확실하다
같은 크기의 종이를 접어 뽑는 방식이다. 조건만 지켜지면 이론적으로 완전히 공평하다.
문제는 조건이 잘 안 지켜진다는 점이다. 당첨 종이만 접는 방식이 달라서 두께가 다르거나, 먼저 뽑는 사람이 만져보고 고르거나, 남은 개수를 세서 확률을 계산할 수 있다. 마지막 사람은 사실상 선택권이 없다.
동시에 뽑거나, 뽑은 뒤 한꺼번에 펼치면 이런 문제가 대부분 사라진다.
사다리타기 — 무작위이긴 한데 균등하지는 않다
사다리는 재미있지만 오해가 많다. 흔히 "출발점을 어디로 하든 확률은 같다"고 생각하는데, 여기엔 조건이 붙는다.
사다리타기의 핵심 성질은 이렇다. 가로줄을 어떻게 긋든, 서로 다른 출발점은 반드시 서로 다른 도착점에 도달한다. 두 사람이 같은 결과를 받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이건 수학적으로 보장된다.
하지만 "특정 출발점이 특정 도착점에 갈 확률이 모두 같은가"는 다른 문제다. 가로줄의 개수가 적으면 출발점 근처의 도착점으로 갈 확률이 훨씬 높다. 극단적으로 가로줄이 하나도 없으면 1번은 무조건 1번으로 간다.
즉 가로줄이 충분히 많아야 비로소 균등에 가까워진다. 사람 수가 4명인데 가로줄을 3~4개만 그으면 결과가 상당히 치우친다. 손으로 그릴 때 가로줄을 넉넉히 긋는 게 좋은 이유다.
또 하나, 참가자가 사다리를 보면서 자기 자리를 고르면 그 순간 무작위가 아니게 된다. 짧은 사다리는 눈으로 따라갈 수 있다. 자리를 먼저 정하고 사다리를 나중에 그리거나, 사다리를 가린 상태로 고르는 게 맞다.
원판 돌리기 — 칸 크기가 전부다
원판은 각 칸이 차지하는 각도만큼 확률이 배분된다. 칸 크기가 같으면 공평하고, 다르면 그만큼 차이가 난다.
원판의 장점은 불공평하게 만들기 쉽다는 것이다. 이게 단점이 아니라 쓸모일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지난번에 당번을 한 사람의 칸을 좁게 만들면 자연스럽게 부담을 나눌 수 있다. 완전한 균등이 늘 원하는 결과는 아니다.
물리 원판은 돌리는 힘이 세면 세울 위치를 예측하기 어려워 사실상 무작위가 되지만, 약하게 돌리면 조작이 가능하다.
여러 번 반복되는 일이라면
당번처럼 매주 돌아오는 일은 매번 뽑는 것보다 순번을 정해두는 편이 낫다. 무작위를 반복하면 운이 나쁜 사람이 연달아 걸리는 일이 실제로 생긴다. 네 명이 네 번 뽑으면 한 사람이 두 번 이상 걸릴 확률이 절반을 넘는다.
한 번 정한 순서대로 도는 방식은 무작위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는 훨씬 공평하다. 뽑기가 필요한 건 순서를 처음 정할 때 한 번뿐이다.
상황별로 고른다면
- 완전한 균등이 필요할 때 — 동시에 뽑는 제비뽑기, 또는 칸 크기가 같은 원판
- 한 번에 여러 명을 서로 다른 결과에 배정할 때 — 사다리타기. 중복이 없다는 성질이 여기서 빛난다
- 의도적으로 가중치를 두고 싶을 때 — 원판
- 재미가 중요할 때 — 사다리타기와 원판. 결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있어서 다 같이 볼 수 있다
가위바위보는 무작위가 아니다
가장 흔히 쓰지만, 사실 가장 무작위와 거리가 멀다. 사람은 무작위로 내지 못한다. 알려진 경향이 몇 가지 있다.
- 처음에 바위를 내는 비율이 높다
- 이긴 사람은 방금 낸 것을 다시 내는 경향이 있다
- 진 사람은 방금 자기를 이긴 것으로 바꾸는 경향이 있다
- 같은 것을 세 번 연속 내는 걸 꺼린다
즉 상대의 습관을 읽는 게임에 가깝다. 재미로는 좋지만 "공평하게 정하자"는 목적에는 맞지 않는다. 특히 어른과 아이가 하면 아이가 불리하다.
동전 던지기도 완벽하진 않다
이론적으로는 반반이지만, 실제로는 던질 때 처음 위를 향하던 면이 나올 확률이 아주 조금 높다는 연구가 있다. 회전축이 완전히 대칭이 아니기 때문이다.
차이가 미미해서 일상에서는 신경 쓸 수준이 아니다. 다만 "완벽히 공평한 물리적 방법"이 생각보다 드물다는 건 알아둘 만하다. 컵으로 덮어 흔든 뒤 여는 방식이 손으로 던지는 것보다 낫다.
컴퓨터로 뽑는 건 믿을 만한가
앱이나 웹에서 뽑는 무작위는 대개 의사난수라고 부른다. 정해진 계산으로 만들어내는 수열이라 엄밀한 의미의 무작위는 아니다.
그래도 메뉴 정하기나 순서 뽑기에는 충분하다. 사람이 결과를 예측할 수 없고, 특정 값이 더 자주 나오지도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람이 하는 것보다 편향이 적다.
다만 결과가 걸린 일이라면 이런 걸 확인하는 게 낫다.
- 뽑기 전에 항목과 인원이 확정돼 있는가
- 다시 뽑기 버튼을 마음대로 누를 수 있는 상황은 아닌가
- 결과가 나온 뒤 화면을 모두가 함께 봤는가
세 번째가 실제로는 가장 중요하다. 방법이 공평해도 한 사람만 화면을 보고 결과를 전달하면 신뢰가 생기지 않는다.
결국 중요한 건 미리 정하는 것
어떤 방법을 쓰든, 결과가 나온 뒤에 방식을 바꾸자는 말이 나오면 공평함은 거기서 끝난다. 뽑기 전에 방법과 규칙을 말로 합의하고, 결과가 마음에 안 들어도 그대로 따르기로 하는 것. 사실 이게 방법 선택보다 훨씬 중요하다.
사다리게임참가자와 결과를 적고 사다리 타기